바릭스는 고대의 감옥 경비 구역에서 지난 일을 곱씹고 있었다.
위대한 기계가 깨어났을 때, 그는 마음속 깊이 무언가가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고 확신했다. 해답을, 힘을, 뭐라고 얻을 수 있길 바랐다. 그러나 자신이 얼마나 몰락했는지만 다시금 깨달을 뿐이다.
바릭스는 콘솔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화면 속에선 감옥 거주민들이 감방 벽을 할퀴어 대고 있었다. 아니, 아무것도 못 얻은 건 아니다. 그보다 더 나쁘다. 이제 의심을 품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릭스의 목표는 언제나 단순했다. 심판의 가문 깃발, 그가 이 우주에 태어난 목적, 동족들을 한데 모으는 것, 그뿐이다.
이제 빛은 항성계 전체에 흐르고 있건만 나타나는 성과는 없다. 여왕도, 에리스나 오시리스도, 거대한 기계가 엘릭스니를 기억하고 있다는 조짐도 없다. 이 상황에서 무엇에 기대를 걸 수 있단 말인가? 하루하루를 버티는 기본적인 생존. 단지 숨을 쉬고 있기에 살아가는 삶. 여기에는 드렉의 저력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바릭스." 페트라가 통신기 너머로 느닷없이 말했다. "189번 베어링에서 군단 수확기를 탈취했다. 포획팀이 가는 중이야. 생존자들은 투기장 행이고. 받을 준비 해."
그에게 남은 것은 페트라 벤지뿐이다. 바릭스는 그녀의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그에게 남은 유일한 동지가 아닌가.
바릭스는 통신기를 조작했다. "예, 예, 그러죠. 41번 구역입니다. 데려오시죠. 팀도 맞이하고 새로운… 손님들이 묵을 방도 준비하겠습니다." 바릭스의 합성 음성이 부글거렸다. 재조정해야 할 모양이다.
"알겠다." 페트라가 교신을 끊었다.
바릭스는 벽에 기대 놓았던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선적 구역으로 향하는 먼 길을 걸으며 그는 자신에게 남은 선택지와 정보, 비밀에 대해 숙고했다.
비밀은 심판의 가문을 보호해 주었다. 정보를 혼란스럽게 만들수록 중요한 위치에 설 수 있었다. 비밀은 가능성을, 장악력을 주었다.
그러나 진정한 심판에는 체계가 필요하고, 엘릭스니의 체계는 가문들이 몰락하면서 함께 붕괴했다. 켈과 프라임 서비터는 수호자들에 의해 하나씩 사라져 갔다. 이제 남은 엘릭스니 문화는 해적과 쓰레기 수집가, 외로운 늑대들 같은, 저 경계 전쟁 이전의 문화뿐이다. 신의도, 명예도 존재하지 않으며… 하등 쓸모도 없는 문화.
엘릭스니 가운데 마지막 희망이 살아 숨쉬고 있기는 했다. 왕들의 켈, 크라스크다. 왕들의 가문은 심판의 가문을 이해했다. 황금기에 경계 전쟁을 함께 끝낸 사이기 때문이다. 크라스크. 그가 꿈꾸는 하나된 엘릭스니의 마지막 희망이 모습을 드러냈다. 연락을 취해야 한다.
바릭스는 그록스라는 현상금 사냥꾼을 고용해 크라스크를 찾고 그와 자신이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을 전하게 했다. 그록스는 바릭스가 혐오하는 동족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탐욕스럽고, 거만하고, 자기 자신만 아는 이기심. 이야기를 나눌 때 그록스는 바릭스에게 장황한 모욕을 퍼부었다.
도망자 바릭스라느니, 거지 바릭스라느니, 켈메이커 바릭스라느니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다 쇼에 불과했다. 그록스는 해낼 것이다. 대가도 에테르 나선 네 뭉치와, 고대의 감옥을 면제해 주겠다는 약속이면 충분했다. 거래가 성립되자 그록스는 발작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하! 나한테 맡겨만 두라고, 도망자 씨!" 그록스는 엘릭스니 일상어를 사용했다. 바릭스가 그를 고용한 유일한 이유다. "네 '켈'이 사라지니 절박해졌군그래. 못 들었나?"
바릭스는 한숨을 쉬었다.
"왕의 가문 켈은 이제 없다, 켈메이커. 미친 집정관 피크룰과 놈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부랑자 각성자의 손에 죽었지. 남은 자들은 지구의 데드존에, 위대한 기계의 조각 그늘에 모여 있다는군. 내 에테르는 어디로 보내 주냐면—"
바릭스는 통신을 껐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위대한 엘릭스니와의 연결고리마저 끊어졌다. 스스로를 켈로 자칭하는 자들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바릭스나 심판의 가문, 또는 가문들을 존중했던 규칙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다. 뿔뿔이 흩어진 회오리의 아이들이 죽은 것이다.
그런데… 피크룰이 케이드와 수호자한테 죽지 않았다고? 그록스가 악한이긴 해도 거짓말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피크룰이 살아 있고 크라스크를 죽일 만큼 강하다면… 또, 그록스가 말한 부랑자 각성자는 또 누구일까? 바릭스는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어쨌든 피크룰이 살아 있는 한, 리프는 안전할 수 없다. 그는 황급히 알맞은 통신 채널을 찾았다.
"케이드 님. 이 바릭스가 면담을 요청합니다. 당신과 페트라와 한 거래, 미완의 임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빛/최고의 충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