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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최고의 충신

9# 재회

"전하…." 바릭스가 저도 모르게 경칭을 붙여 불렀다. 거의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바릭스는 대공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평범한, 아름다운 황금빛 눈동자에 일순이지만 어둠이 춤추는 것이 보였다. 바릭스는 페트라를 돌아보았다.

"페트라 벤지…. 영문을 모르겠다."

"그렇겠지. 그게 말이지… 뭔가 이상해졌어, 바릭스. 이성을… 잃으신 것 같아. 가둬 놔. 이 구역 전체를 봉쇄하고. 우리 둘 외에는 누구도 못 들어오게 해. 누구한테도 말하지 마. 울드렌 소프는 토성에서 죽었다고, 그렇게만 알려져야 해."

바릭스는 대답을 구하듯 케이드를 보았지만, 케이드는 두 손을 드는 자세를 취했다.

"왜 날 보고 그래. 우리가 찾아냈을 땐 징징이 왕자님이 피크룰과 벌써 찰떡처럼 붙어 있었단 말이야. 둘 다 쏘지 않으려고 무진 애쓴 게 이거야."

페트라는 왕족을 가둔 감방을 바라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망설임이 어린 것도 한순간, 그녀는 해치를 닫아 울드렌 대공을 가뒀다.

"바릭스." 케이드가 전에 없이 사근사근한 투로 불렀다. "여기 있는 이 피크룰이 투기장에 오걸랑 나한테 알려 줄래? 내가 이 친구랑 못 끝낸 얘기가 있거든."

"그러죠, 네." 바릭스는 페트라의 시선이 대공을 가둔 감방에 머물러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페트라는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부끄러움마저 느끼는 것 같았다. 바릭스가 쳐다보는 것을 알아채고 페트라는 자신을 다잡았다. 여왕의 분노답게 꼿꼿한 얼굴로. 바릭스와 페트라의 눈길이 마주쳤다. 바릭스는 그녀의 혼란과 부끄러움을 읽을 수 있었다.

"내 친구 바릭스." 페트라의 목소리에 다정함이 담겨 있는 걸까? "저 분은 변하셨다. 저 눈은…" 페트라가 멈칫하더니 다시 말했다. "울드렌이 입을 열거든 귀 기울이지 마. 입에서 나오는 건 참담한 거짓뿐일 테니." 그 말을 끝으로 페트라는 걸어 나갔다. 케이드가 바로 뒤를 따랐다. 그들의 등 뒤에서 구역 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바릭스는 한참이나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끼는 건 살면서 처음이었다.

페트라 벤지와 울드렌 소프는 오랫동안 서로를 흠모해 온 사이다. 함께 있을 때는 편안한 분위기였고, 말로 표현되지 않는 깊은 애정이 느껴졌었다. 두 사람이 함께 전장에 나가면 그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이고 위협적일 수가 없었다. 사신과 함께 춤을 추며 맞닥뜨리는 적마다 불행을 안겨 주었다.

바릭스는 울드렌이 대체 어떤 범죄를 저질렀기에 페트라가 심판을 내렸는지 알고 싶었다. 대공이 갇힌 감방문을 다시 열면서는, 페트라가 바릭스 자신이라도 심판했을지 궁금해졌다.

바릭스는 울드렌 앞에 무릎을 꿇었다. "돌아가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살펴 드리게 되었군요." 바릭스의 팔이 조심스레 울드렌을 쓰다듬었다. 탐색하는 듯하지만 다정한 움직임이었다.

울드렌이 눈을 깜박이더니 바릭스를 응시했다. 아니, 황금빛 눈동자가 바릭스 너머를 응시했다고 해야 할까. 바릭스는 확인 차 어깨너머를 돌아보았다. 물론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님…." 건조하게 갈라진 입술 사이로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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