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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최고의 충신

13# 충성의 자리

바릭스의 실험은 성공했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에테르 혼합물을 복용한 몰락자는 사망했다. 즉, 이 혼합물은 생명을 연장해 주는 물질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을 "창조하는" 물질이었다. 검은 에테르가 짙은 안개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지만, 생명 창조를 위한 "빈 몸"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실험에서 이 물질은 감옥 바닥에 흩어져 있던 드렉의 시체를 찾아냈다. 물질은 천천히 흡입되듯 시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러자 시체가 부풀어 오르고 터지기 직전까지 늘어나더니 벌떡 일어났다. 검은 에테르가 죽은 드렉에게… 새 생명을 준 것이다.

시체가 부글부글 끓는 것 같았다. 숨소리는 차분했지만 강하고 빨랐다. 가슴 속에 화산이라도 있는 것처럼 우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트기의 엔진이 연료를 소비하듯 드렉이 검은 에테르를 빨아들이자 피부에서 검은 불길이 타올랐다. 바릭스 앞에 펼쳐진 광경은, 증오를 먹고 사는 분노의 화신이자 또 다른 회오리의 시작이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몰락자가 아니었다. 피크룰은 그들을 자신의 경멸자라고 했다.

피크룰은 그의 뒤에서 계속 웃다가 갑자기 웃음을 멈췄다. 그 순간 경멸자는 바닥으로 떨어져 또다시 시체로 바뀌었다.

"너희들의 이야기, 켈, 가문은 모두 고대의 선조와 스케이스처럼 곧 잊혀질 것이다." 피크룰은 바릭스가 아끼는 심판의 확성기에 대고 으르렁거렸다. 바릭스는 감방에 더 가까이 다가가 감방 현창에 얼굴을 갖다댔다.

피크룰은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었다. 그러더니 다시 바릭스를 쳐다보았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침묵이 허공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넌 진정한 충성심이 어디 있는지 안다더군."

광신자는 현창에서 물러서서 기다렸다.

충성심이라. 진정한 충성심.

그는 마라의 추억이 떠오르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 대신…

레인 가문의 예언에 대해 생각하고 말았다.

켈 중의 켈이 나타난다는 예언.

며칠 후 바릭스는 마지막으로 업무를 처리했다. 그는 중앙 통제소로 향했다. 그리고는 보안 시스템 테스트 시뮬레이션을 실행하고 결과를 토대로 몇 가지를 조정했다. 그리고는 일일 교대 근무 명단을 수정하여 완성했다 마지막으로 감옥에 마지막 남은 상위 서비터와 비밀 대화를 나누었다. 고대의 감옥에는 감시관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페트라와는 얘기를 하지 못했다.

그날 밤 고대의 감옥은 혼돈 상태에 빠졌다.

"네가 기다리는 때가 올 것이다, 바릭스."

울드렌은 늘 앉던 곳에 앉아 늘 보던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동생이 알려 주었다. 여동생이 그대에게 마지막으로 바라는 건 하나뿐이다."

"아닙니다, 대공님." 바릭스의 걸걸한 목소리에는 오만 가지 감정이 묻어났다. "저야말로 대공님께 마지막으로 봉사할 것이 있습니다."

바릭스는 마음이 바뀌기 전에 자리를 떴다.

경적 소리가 들렸다. 감옥 상위 서비터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바릭스의 음성으로 울려 퍼졌다. "보안 시스템 고장. 긴급 종료 및 재부팅 개시 중."

감옥은 잠시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덮였지만, 곧 비상등이 독방동을 밝혔다. 그의 주위에서 경보가 울리고, 경고등이 켜지고, 공압 장치가 쉭쉭거리고, 이 독방동의 냉동 감방들이 열리기 시작하며 초저온 액체가 증발하여 안개로 피어올랐다.

바릭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최대한 빨리 출구로 갔다. 돌아보지 않아도 어떤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경멸의 남작들과 대공 울드렌이 풀려난 것이다.

고대의 감옥 내 모든 죄수들도 풀려났다.

바릭스는 난장판이 된 감옥에서 도망쳐 나와 페트라와 케이드가 대공 울드렌을 몰래 데려왔던 비밀 통로로 빠져나갔다. 감옥에 보관되어 있었던 에테르를 가득 실은 배가 대기하고 있었다.

바릭스는 걸어가면서 무사히 빠져나간 후 감옥 중계기를 통해 전송할 명령 두 개를 녹음했다. 첫 번째 녹음 파일에서는 음성 합성을 끄고 깊게 울리는 확성기를 통해 명령을 전달했다.

심판의 소환에 몇 명이나 응답할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시도는 해 봐야 했다.

두 번째 녹음 파일에서는 음성 합성을 다시 켰다. "날더러 배신자라고 하더군. 난 최고의 충신이었는데. 나도 소문을 다 들었지. 벌레 같은 놈이라는 소문을. 그는 말을 멈췄다. "내가 몰락자라는 얘기를."

그는 경사로를 따라 배를 향해 빠르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교각 쪽으로. 그가 지나가자 늑대와 같은 색의 반달이 인사를 했다.

"나도 다 들었어. 심판의 가문은 항상 듣고 있지. 선택의 여지는 없어. 가문을 합쳐야 해." 배의 교각에 도착한 그는 다시 말을 멈췄다. "심판자는 항상 듣고 있다."

"거대한 기계가 심판을 내렸다. 엘릭스니는 싸움에 졌다. 증오에 진 것이다." 그의 목소리가 울컥했다. "이 증오를 참을 수가 없다." 그가 말하는 사이에 배의 엔진이 부르릉거렸다. 장막을 통해 감옥에서 울려 퍼지는 폭발음이 들렸다. 그가 통제하던 곳이 무법천지가 된 것이다. 그가 탄 배는 만의 장벽을 통과해 육지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달리 갈 곳이 없다. 이곳에는 다른 사람도 없다." 그"달리 갈 곳이 없다. 이곳에는 다른 사람도 없다." 그는 몸을 쭉 펴고 일어섰다. "그래서 나는 켈 바릭스가 되겠다. 심판의 가문은 엘릭스니."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는 목청을 가다듬으며 반복해서 말했다. 차분한 목소리로. "엘릭스니는… 일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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